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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장/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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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장·사회장·기관장

국가장은 국가나 사회에 현저한 공적을 남겨 전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후에 국가 주도로 치르는 장례로 [국가장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의전입니다.
사회장은 국가장 다음으로 예우를 갖추어 거행하는 장례로서, 애국지사, 3부요인, 정당대표 그리고 국가 · 사회발전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사가 사망하였을 때, 관련단체가 중심이 되고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를 대상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장의절차를 추진하며, 장례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하여 훈장을 추서하기도 합니다. 사회장도 국가장과 같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여 장례절차와 방법 및 장지 등을 결정하여 거행하며, 장례의식은 고인의 유언 또는 유가족의 희망에 따라 진행됩니다.
사회장과 유사한 장의의식으로는 기관장이 있는데, 기관장은 '군예식령(대통령령', '국회장의규정' 및 각급 기관의 자체예규로 대상과 장의절차를 정하여 둔 경우나 기관업무 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공무원이 사망하였을 때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관장의 종류로는 국회장, 정부장, 각 부처장 및 기관장, 각 군장 및 부대장 (경찰장 등)이 있습니다. 국회장의 경우 현직 국회의원으로 확정되어 있어 현직 국회의원 사망 시 국회사무총장이 국회의장의 재가를 얻어 추진합니다. 정부장의 경우 고인의 소속기관의 장이 사전에 관련부서(행정안전부, 국무총리실(의전), 청와대 관련 비서실 등)와 협의를 거친 다음, 소속기관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추진합니다. 외교통상부장 등 기관장은 형식적으로는 소속기관의 장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장의 절차의 추진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사전에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추진합니다.
사회장 선례로는 김병로(金魯) · 김활란(金活蘭) · 스코필드(Schofield.F.W.) · 곽상훈(郭尙) · 이갑성(李甲成) · 안호상(安浩 相) 등이 있으며, 프리드라이프는 2011년 12월 故 박태준 前 국무총리 사회장을 진행 및 2010년 4월 해군장으로 치뤄진 故 천안함 46용사 합동 분향소 등을 설치 운영하였습니다.

사회장

故 박태준 前 국무총리 사회장

기관장

故 천안함 46용사 해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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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라이프가 알려드리는 기관장 TIP

기관장의 대상은 어떻게 되나요?

국회장
현직 국회의원 (국회장의규정)
정부장
현직 장관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이 결정
각 부처장 및 기관장
현직 장관·차관, 부처직문에 현저한 공이 있는 공무원
각 군장 및 부대장 (경찰장 등 유사)
현직 총장·차장, 각급 부대장, 작전 수행중 전사자

운구 행렬

  • 빈소 영결식장 운구 행렬

    (앞부터) 경찰차, 영정*훈장차, 영구차, 상주차, 유가족차, 장의집행위원장차, 수행버스*수행차(장례위원, 조객 및 직원) , 경찰차
  • 빈소 안장지 운구 행렬

    (앞부터) 경찰차, 영정*훈장차, 대통령 화환, 영구차, 상주차, 유가족차, 장의집행위원장차, 수행버스*수행차(종료관계자,장례위원,화환, 조객 및 직원) , 경찰차
빈소 → 영결식장 운구 행렬
영결식장으로 떠나기 직전 빈소에서 유족 측 주관으로 가정 관습에 따라 발인제가 진행되며, 발인제가 끝나고 영구를 영구차로 운구하게 됩니다.
영결식장 → 안장지 운구 행렬
장의 행렬 중 선도차에서 유가족 차량까지만 흑색천으로 장식하고 행렬차량은 각각 일련번호를 붙여 두어 행렬을 통제하며, 영구가 영구차에 안치되면 영결식장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 위의 이미지 예시는 선례를 바탕으로 제작하였으며, 행사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사회장

1922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학생기독교청년연맹대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간 이상재 선생은 일본 YMCA 대표단과 담판을 벌여 한국 YMCA가 단독으로 세계 YMCA 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습니다. 이후 선생은 연합 소년척후단의 총재, 조선일보사 사장, 전국기자대회 의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친일지로 출발한 '조선일보를 당대를 대표하는 언론으로 발전시키는 산파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런 선생의 마지막 직함은 신간회 회장이었는데 선생은 지도자를 찾고 있는 민중들을 위해 사회운동가로서 마지막으로 이를 수락 했습니다. 그 해 3월 숨을 거둔 이상재 선생의 장례는 처음으로 '사회장' 이라는 이름하에 서울(당시 경성)에서 치러졌습니다. 그의 운구행렬에는 무려 10만명의 추모객이 따랐고, YMCA를 비롯한 243개 사회단체들이 주도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장 이상재 선생 장례행렬
(이미지 제공 : 독립기념관)